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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억압된 세상 속 순수한 여정. <벌집의 정령> 리뷰

by Cine sapiens 2025. 2. 11.

 

안녕하세요. 씨네 사피엔스의 그랑카페입니다.


들어가며

 

 

작년 '해외 영화 결산'에서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작품 <클로즈 유어 아이즈>를 소개해 드렸었는데요. 올해 1월, 감독의 데뷔작인 <벌집의 정령>이 같은 *수입사를 통해 개봉했습니다.

 

(*M&M 인터내셔널)

 

저는 이번 작품도 극장에서 보고 왔습니다. 스페인 역사의 아픔을 은유적으로 담아낸, 여운 깊은 작품이었는데요. 지금부터 리뷰와 함께 영화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정보

 

 

벌집의 정령

El espíritu de la colmena (1973)

 
감독: 빅토르 에리세
출연:
 아나 토렌트, 페르난도 페르난 고메즈 외.
장르:
 드라마
상영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 시간
: 98(1시간 38분)

개봉일: 2025년 1월 29일


영화 소개

 

 

영화 <벌집의 정령>은 스페인의 영화감독 빅토르 에리세의 데뷔작입니다. 그는 1973년에 연출한 본작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총 *네 편의 영화만을 세상에 내놓으며 과작의 대명사가 되었는데요. 비록 작품 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비평적으로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스페인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벌집의 정령> (1973), <남쪽> (1983), <햇빛 속의 모과나무> (1992), <클로즈 유어 아이즈> (2023))

 

빅토르 에리세는 <벌집의 정령>으로 *산 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황금조개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일찍이 연출력을 인정받음과 함께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특히 본작은 프랑코 정권의 시대상을 암시적으로 담아내며 정부 검열에 맞선 작품이자, 아이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동화적이면서도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낸 걸작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국제 영화제)

 

 


영화 내용

 

 

(스포일러 주의)

 

 

1940년. 스페인 카스티야 평원의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트럭(영화 필름을 담은) 한 대가 그곳에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곧이어 마을에서는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상영되는데요. 군중 속에서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아나(아나 토렌트)'와 그의 언니 '이사벨(이사벨 테예리아)'의 모습이 보입니다. 한편, 직접 쓴 편지(잊지 못한 전 연인에게 보내는)를 열차에 딸린 우편함에 넣는 '엄마(테레사 김페라)'와 양봉업을 하는 '아빠(페르난도 페르난 고메즈)'의 모습도 비춰지는데요.

 

(*제임스 웨일의 1931년 영화)

 

<벌집의 정령>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두 자매, 특히 아나의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아나는 언니와 함께 본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며, 극중 괴물이 소녀를 진짜 죽였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괴물을 왜 죽였는지 순수한 질문을 던지는데요. 이사벨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영화는 허구이고 괴물과 소녀 모두 죽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그 괴물은 정령이며 우리 주위에 있다고 전하는데요.

 

 

이후 아나는 정령을 찾기 위한 상상의 여정을 떠납니다. 그리고 이사벨이 정령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한 낡은 집(우물이 있는)을 홀로 찾아가는데요. 그곳에서 그녀는 우연히 군인(소속이 불분명한) 한 명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아나는 그를 마치 정령처럼 대하며 사과와 옷(아빠의 옷) 등을 건네주고 떠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군인은 본인을 쫓아온 군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아나가 전해준 옷과 주머니에 있던 시계로 인해 그녀의 아빠가 의심을 받게 되는데요. 다만 아빠는 아나의 소행임을 알게 되고 의심을 벗게 됩니다.

 

곧이어 아나는 군인이 있던 집을 다시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곳곳에 묻은 혈흔만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동시에 그녀는 본인을 찾아온 아빠를 만나게 됩니다. 다음 순간 아나는 혼란에 빠진 채 멀리 도망갑니다.


느낀 점

 

 

 

영화를 보면서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아나 집의 창문이었습니다. 창문은 벌집(아빠가 서재에서 키우기도 하는)의 모양을 닮아있는데요. 여러 해석에 따르면 벌집 모양 창문으로 바라본 바깥은 프랑코 정권 영향하에 있는 억압적인 세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깥에서 바라본 아나의 집 역시 다를 바 없는데요.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라는 명언처럼 그저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할 뿐입니다.

 

사회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면에서도 그렇지만, 사실 이미지 그 자체로서도 인상 깊은데요. 창문의 노란빛과 실내의 음영 그리고 바깥의 마을과 하늘 풍경은 대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당시 촬영 감독을 맡았던 '루이스 쿠아드라도'는 뇌종양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상태에서 작업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띈 부분은 아나 역을 맡은 배우 아나 토렌트였는데요. 당시 그녀가 배우라는 직업의 개념을 모르는 상태(어린 나이에)로 촬영을 임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정말 순수함이 묻은 놀라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특히 그녀의 크고 맑은 두 눈이 그 점을 부각시키기도 하는데요. 언니, 이사벨로서 함께 자매를 연기한 이사벨 테예리아와 아빠 역의 페르난도 페르난 고메즈도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끝내며

 

 

 

영화 <벌집의 정령>은 현재에도 많은 영감을 주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이야기에 담긴 진실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아 작품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감독의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연출과 때 묻지 않는 순수함으로 여정(정령을 찾아가는)을 이끌어나가는 배우의 연기가 모여  영화를 계속해서 탐구하고 싶게 만드는 힘을 느끼게 해줍니다.


 

오늘도 글을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음에 또 좋은 영화와 함께 찾아오겠습니다.